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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獄 / 납치당했다고?

2009/08/25 23:45 | Posted by 우나(una)

연락이 온 것은 새벽 3시였다. 한밤에 걸려온 전화에 고쿠데라는 짜증을 내며 전화기를 부여잡았다. 탁한 그의 음성이 거칠게 침실에 울렸다.

"……무슨 일이야."
"고쿠데라군, 히바리씨가 납치당했어. 최대한 빨리 본부로 와줘."
"네? 십 대째?"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화들짝 놀란 고쿠데라는 눈을 비비며 재빨리 달력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4월이 아닌데?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정말 4월이 아닌데?

      ***

"고쿠데라군이라면 5분 안에 달려올 줄 알았는데, 너무 늦었어. 실망인 걸?"

다급한 전화를 건 장본인답지 않게 츠나는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그런 보스의 행동에 고쿠데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만 10분이나 지각을……."
 
4월 1일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고쿠데라는 굳은 확신을 갖고 강단지게 변명했다. 그 히바리가 납치라니! 차라리 사과나무에서 배가 자라는 걸 믿겠습니다! 버럭버럭 외치는 고쿠데라의 합당한 예시에 츠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아, 이런. 이제 진정할까? 일은 놀랍게도 진짜야."

츠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일의 현실성을 확정지었다. 이에 고쿠데라는 몹시 의아한 얼굴로 물어왔다.

"대체 뭡니까? 수면제로 잠들 놈도 아니고 종적도 알 수 없는 놈인데."
"뭐, 그건 그렇지."

코끼리도 한 방에 날릴 그 놈을 대체 무슨 수로? 고쿠데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유를 생각했다. 무슨 수로 잡은 걸까? 아니 일단 그게 가능하긴 하던가? 그렇게 몇 분을 궁구한 후 고쿠데라는 겨우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세울 수 있었다.
이미 나미모리를 떠난 히바리에게 예전의 파인애플과 같은 수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최소한 인질이라도 있어야 납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날개를 펄럭이는 노란 새가 선명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혹시 히버드를 인질로 잡기라도 했답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연락을 가져온 게 히버드인 걸."
"그럼 대체 왜?"

믿을 수 없다는 고쿠데라의 진심이 어떻게보다 왜를 우선시했다. 제 놈이 스스로 가는 것 외에는 납치할 방법이 없을 텐데……. 깊숙이 패인 미간을 매만지며 고쿠데라가 중얼거렸다. 츠나는 어두운 안색의 부하 앞에서 또 한 번 웃을 수 없어 침을 꿀꺽 삼키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진중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말이지. 히바리씨가 물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고 급류에 뛰어들었다가 언덕에서 올라올 때 수면가스를 대량 살포하고 특수 그물을 던져서 잡았대."
"……맹수포획입니까."
"하지만 납득은 가지 않아?"

그 정도로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히바리씨를 산 채로 납치할 수 있었겠어. 적의 조직적인 준비에 감탄하며 덧붙여진 츠나의 말에 고쿠데라는 이 말도 안되는 사실을 비로소 현실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놈이 거기에 올 줄 알고 그 시점에 고양이를 물에 풀었답니까?"
"히바리씨가 들린 꽃가게 점원이 운나쁘게도 최근에 재단과 적대관계가 된 조직의 일원이었대. 그가 소식을 전했겠지? 그리고 건져올린 고양이 시체가 100마리가 넘는 걸보면 역시 양으로 승부한 게 아닐까 싶어."

불운과 계획이 적절히 섞인 사건이다. 그 놈의 동물 아끼는 버릇만 없었어도 문제될 게 없었을 텐데. 고쿠데라는 주인에게 생채기를 내느라 바쁜 자신의 고양이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애꿎은 고양이만 죽었군. 그런데 아니 잠깐.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 고쿠데라는 심상치않은 얼굴로 의문을 제기했다. 고양이야 매우 그럴싸하지만 꽃가게는 왜 들어간 거지?

"꽃이요? 최근엔 장례식도 없었는 데, 대체 꽃가게에는 왜 갔답니까?"
 
괜히 제 놈답지 않게 엉뚱한 짓을 하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바보, 멍청이.
디저트 위에 뿌리는 호두 가루만큼의 걱정을 담아 고쿠데라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런 맹점을 찌르면 곤란한데. 츠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고쿠데라군, 잊은 거야? 벌써 9월인데."

당혹한 고쿠데라의 얼굴이 시뻘건 정도를 넘어 시꺼매졌다. 핀란드의 빙벽같이 단단한 그의 애인보다 9월 9일을 깜박했던 건 오히려 고쿠데라였던 모양이다.
'사귀는 사이라면 노력해야지. 꽃은 필수야!! 자자, 화내지 말고.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매뉴얼이라고. 알겠어? 그러니 쿄야, 제때 선물해라.'
어릴 적 스승이 주입한 엉뚱한 가르침에 따라 히바리 쿄야는 필수불가결한 날이면 꼬박꼬박 장미 100송이씩을 챙기곤 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내던지듯 장미를 던졌지만 그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쳇. 그 자식, 하네우마에게 엉뚱하게 배워서 그러는 겁니다. 그것도 규칙이라니까 괜히 충실하게 지키는 거라구요!! 과거의 풍기위원장 아니랄까봐 지레 그러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고쿠데라는 전전긍긍하며 좀 더 비아냥거릴만한 소재를 애써 찾았다. 소태를 씹듯 말하는 그의 불쌍한 안색과 인근의 벽돌색을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 츠나는 엉뚱한 착상을 하며 고쿠데라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


5분을 소모하고도 고쿠데라는 여전히 신색을 회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만의 농도만이 쓰잘데 없이 짙어졌을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싶은 지 이제는 소소한 사생활까지 꺼내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십 대째, 그 놈이 얼마나 치즈를 싫어하는 줄 아십니까? 전에 와인과 치즈까지 제가 준비를 했는데, 그 걸 그냥 접시 째로 던지더라구요. 제가 그 걸 다 치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정말 아직도 화가 납니다! 거기에 카펫에 뭍은 치즈를 핥는다고 오이가 튀어나와서 또 얼마나 난리가 났는 지 정말! 히바리 놈 때문에 정말!!"
 
츠나는 묵묵히 들으며 적당히 추임새를 붙여 주었다. 아,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그래.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같은 레퍼토리가 돌림노래를 하는 데에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츠나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하지만 헤어질 건 아니잖아? 그렇지? 헤어질 게 아니라면 그런 말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야."
 
슬쩍 그렇게 운을 떼며 고쿠데라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깊은 심호흡과 함께 츠나는 썩은 동태의 눈알을 추억하며 턱을 굈다. 아서라. 그런다고 둘이 그렇고 그런게 사라지는 줄 아냐? 소꿉놀이도 아니고. 조금 어처구니없어하는 본심과 달리 보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화했다.

"고쿠데라군. 잘 알겠어. 그러니 이제 그만 구출 계획을 짜야하지 않을까? 이거 정말 시급한 사안이야."

츠나는 성실한 태도로 대화의 진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조금 상냥하게 대한 탓일까. 여전히 불만스러운 고쿠데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며 사태의 본질을 해치려 들었다.

"십 대째, 그런데 굳이 히바리를 구하러 가야 합니까?"

납치되었는데 안 구하면 뭘 구하려고. 츠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제 생각에 빠진 고쿠데라는 보스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는 일에 집착했다.

"설마하니 그 놈이 얌전히 잡혀 있겠어요? 벌써 뛰쳐나왔을 겁니다. 가봐야 괜히 시간 낭비라고요."
"거기까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고쿠데라군. 츠나는 줄줄이 이어지는 부연 설명을 단칼에 잘랐다. 더 들어봐야 생산성 있는 말이 나올 가능성은 없었다. 거기에 위급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웃고 떠드느라 벌써 1시간을 소요하고 말았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위중한 사안이다. 츠나는 온화한 얼굴로 담담히 마피아 보스다운 한마디를 건넸다.

"히바리씨가 강한 만큼 오히려 손목을 자르고 복부에 칼을 박고 아킬레스건을 그어버릴 지도 모르는 거 아닐까?"
"전담하겠습니다!!"

본고레의 오른팔은 바람보다 빠르게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열린 방문이 덜그럭거리고, 복도를 달리며 외치는 그의 화급한 지시가 사방에 울렸다.

"수고해줘. 고쿠데라군."


--------------

대략 고쿠데라가 19세에서 20세 정도일 때의 이야기로 히바고쿠 맞습니다. ^^ 고쿠데라 납치도 좋지만 히바리 납치도 좋지요. 덩그러니 말하기가 그래서 글이나마 올리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부디 읽을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으하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히바리에겐 왠지 무림의 이미지가 있지요. 그 얼굴 닮은 사람도 중국 사람이고 말입니다. 뭐, 그렇다고 정파는 아닌 거 같고 굳이 따지자면 역시 마교나 혹은 최근 유행하는 흐름대로 사파연합 뭐 이런 곳에서 짱을 먹는 역할이 어울리죠. 아니면 거기에 소속은 되어 있는데 살아있는 지 죽었는지 잘 모르는 전대 기인같은 역할도 어울리구요. 만약 전대 기인이라면 히바리는 필히 반로환동 케이스일 거라고 봅니다. ㅎㅎ 그런 느낌으로 사지근맥 절단 이런 느낌의 문장을 하나 던져보고 싶었어요.
흠흠. 그리고 뜬금없지만 흡*귀 히*링 너무 귀엽대요. 하지만 V점프는 너무 멀고.........ㅜㅜ

+

참. 8월 서플에 지인이 부스(아 40)을 내세요. 일반존 위탁 받아주신다고 해서 어차피 갈 겸 겸사겸사 남겨봅니다. 제가 토요일에 갈 거라서요. 혹시나 토요일에 [외투] 사실 분 계시면 여기에 비밀 덧글로 닉네임과 책 제목을 시크하게 적어주세요. 어차피 프린트 할 게 있어서 갈 거라 금요일(28)일까지 남겨주시면 됩니다. 따로 포스팅할까했는데 괜히 쑥쓰러워서 그냥 이렇게 덤으로…. 참, 판매를 열심히 하려는 게 아니라 겸사겸사라 따로 더 뽑고 그런 건 없을 거 같구요.였는데 토요일날 가게되어서요. 뭐, 그냥 몇 권은 팔지도. 에라. 여하튼 아무도 안 남겨주셔도 ^ㅅ^ 하며 넘어가니 맘 편히 생각있으신 경우에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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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고쿠 " 외투 " 책 소개

2009/07/30 00:32 | Posted by 우나(una)

0. 제목 :
외투

1. 책 사양 : 현재 국판(148X210mm) 예정으로 총 20p입니다. 가격은 1000원(원래 무료배포할까 하던 거라 그냥 좀 저렴하게 갔습니다. ^^;)입니다. 삽화는 없고 소설만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연령 호/모 책입니다.

2. 간략한 소개 :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히바고쿠 패러디로 대충 막 성년이 된 즈음의 두 놈을 다룹니다. 역시나 다른 커플은 일절 등장하지 않습니다. 9대의 전언에 의해 아주 사소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 고쿠데라의 이야기입니다. 필요에 의해 단역으로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만 전혀 중요 인물이 아닙니다. 물론 히바리도 나옵니다. 많이 달달합니다.
-> 꽃 멍울을 보셨다면 그 후 한 5년 정도 지나서 둘이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 보신 분이라면 둘이 사귀네? 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립된 이야기로 이전에 낸 책들과 연관은 없습니다.

* 퇴고 중이라 샘플이 많이 짤막합니다. 차후 수정할 것 같지만 일단 양해 부탁드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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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외투 중에서

2009/07/30 00:31 | Posted by 우나(una)

꼬마 녀석의 요청에 디저트로 쿠키와 케이크를 사주며 여전히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다. 오가는 사람은 많아도 들어오는 사람이 적어 테라스는 어디까지나 한적했다. 멍하니 식은 커피를 마시면 드문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건 뭐야. 사생아?"
"누가!! 어? 히바리."

놀라서 화급히 뒤를 돌아보니 검은 양복의 히바리가 말간 얼굴로 서있었다. 의자를 끌어 근처에 앉은 그는 역시나 카푸치노를 부탁한 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주중의 애매한 시간대라 카페에 사람이 드문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여긴 어쩐 일이야?"
"조사차. 그보다 뭐 저것?"
"일이야. 아이의 대부가 9대거든."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히바리는 힐끗 아이를 한 번 쳐다본 후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카푸치노가 도달하고 대화는 끊긴 채 음료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이가 입가에 가루를 묻히며 쿠키를 먹는 사이 밑바닥을 보인 카푸치노 잔을 내려놓은 고쿠데라는 새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순간 아차 싶었다. 혀를 차며 히바리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뱀 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여긴 흡연석이고 나는 성인이야! 당당하게 외쳤지만 히바리의 빠른 손놀림에 한 모금도 들이마시지 못한 담배는 속절없이 불이 꺼지고, 휑한 담뱃갑의 마지막 한 개비가 그렇게 사라졌다.

"에잇, 젠장. 너 물어내!"
"흐응. 그렇게 목숨을 걸만큼 담배가 피우고 싶은 거야?"

히바리는 호전적인 미소와 함께 컵을 내려놓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재수 없는 놈. 코끝을 찡그리며 외면했다. 오늘 일진이 왜 이러나. 일도 안 풀리고 이놈이나 만나고.

"되는 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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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제목 : 꽃 멍울

1. 책 사양 : 현재 국판(148X210mm) 예정으로 총 82p입니다. 가격은 3500원입니다. 삽화는 없고 소설만 있습니다. 이번에도 19금이지만 이번엔 호/모 책입니다.

2. 간략한 소개 :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히바고쿠 패러디로 대충 고쿠요 전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다른 커플은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히바리와 고쿠데라 간의 관계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어쩌다보니 하게 되고, 하다 보니 계속 하게 되고, 그러다 우린 왜 할까? 하며 골몰하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방황하는 청춘러브스토리입니다. 명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아래에 샘플을 올렸으니 참고바랍니다.


* 현재도 퇴고 중이기에 은근슬쩍 샘플이 조금씩 고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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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꽃 멍울 중에서

2009/04/21 01:36 | Posted by 우나(una)

오늘은 드물게 히바리가 교문에서 풍기단속을 했다. 십대째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야구바보는 호기롭게 웃었다. 고쿠데라 하야토는 미간을 구겼다. 교문 앞에서 히바리가 직접 단속하는 일은 드물었다. 골치 아픈 일이다.
그동안 풍기위원과 고쿠데라간에는  암묵적인 묵인이 존재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제외하면 고쿠데라를 감당할 수 없는 데다 고쿠요와의 일이 암암리에 알려진 탓이었다. 거기에 담배를 피고 주렁주렁 악세사리를 달고 다니지만 고쿠데라는 삥을 뜯긴 커녕 행동만은 양호했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묵인은 조약만큼 굳건했다. 문제는 그게 다 히바리가 없을 때의 이야기라는 거다. 젠장. 고쿠데라는 혀를 차며 놈을 노려봤다. 순서대로 통과하려고 하자 역시나 히바리가 제지해왔다.

"거기 너, 액세서리 압수야."

순순히 따를 고쿠데라가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폭탄이 터졌다. 오늘따라 유독 흉흉한 풍기위원장은 양 손으로 애기를 휘두름은 물론 다리도 사용해와서 싸움이 끝났을 때에는 걷어차인 명치를 감싸고 바닥에서 뒹구는 고쿠데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야마모토는 물론 츠나도 개입하지 못했고, 그럼 어느새 벌써 손힘으로 목걸이를 뜯어낸 히바리가 휘하의 위원에게 남은 장신구의 압수를 명하고 있었다.
싸늘한 시선을 뭉쳐있는 학생들에게 준 히바리덕에 주변엔 도주하는 학생들이 가득했고, 그 뒤를 쫓아 떠나가는 히바리를 보며 츠나와 야마모토는 서둘러 고쿠데라에게로 달려갔다. 걱정을 표하자 고쿠데라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츠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양호실에 가지 않아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가봐야 어차피 샤말이고, 타박상은 좀 있지만 그래도 견딜만합니다."

몇 번을 권해도 사양해서 셋은 별 수 없이 그대로 교실로 향했다. 빈손과 허전한 목덜미를 매만지며 고쿠데라는 연신 투덜거렸다. 그 목걸이 비싼 거였는데. 투정부릴 정도면 건강한 거겠지. 츠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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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조회를 하는 중에 교내방송이 울렸다. 늘 그렇듯 교칙 위반자의 이름을 부르며 응접실로 호출했다. 아마도 반성문을 쓰라는 거겠지. 흘깃거리는 시선이 고쿠데라를 향하고 담임은 담담하게 호출에 응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지명당한 고쿠데라는 별다른 반응없이 묵묵히 짐을 챙긴 후 츠나를 향해 만면의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 보면 오늘부터 야마모토는 동아리 연습이 있어 함께 가지 못한다고 전했더랬다.

"그럼 이제 갈까요? 십대째."

야마모토 없이 가는 것이 기쁜지 고쿠데라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츠나는 히바리를 염려했지만, 고쿠데라는 망가진 장신구 따위 없어도 된다며 삐죽 입을 내밀었다. 그딴 놈 신경쓰지 말고 빨리 가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대고 한 가닥 걱정을 내비쳤지만, 상대는 툴툴거리며 하교만을 재촉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다행히도 특별한 제지 없이 둘은 무사히 사와다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쿠데라는 내일 뵙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고, 떠나는 뒷
모습을 보며 츠나는 왠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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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물기를 닦고, 타박상에 좋은 연고를 바르고, 흡수될 때까지 수건 한 장을 걸친 채로 TV를 봤다. 수십 개의 광고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먹고 담뱃재를 버리고 이를 닦았다. 그럼 벌써 11시였다. 평소보다 이르지만 부상 정도를 고려해 고쿠데라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뒤척이길 1시간.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젠장,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이를 바드득 갈며 몸을 일으켜야 했다. 우유나 뎁혀 마실까? 고쿠데라는 인상을 쓰며 냉장고를 열었지만 심지어 맥주캔조차 보이지 않았다. 위도 아래도 모두 텅텅 비어있었다.

"우유나 사러 가야겠군."

한숨을 쉬며 옷을 챙겨 입었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까지 왕복 20분. 이왕 나가는 김에 산책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잠이 오겠지. 고쿠데라는 지갑을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밖은 쌀쌀했지만 몸이 떨릴 만큼 춥진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느긋하게 걸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출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날씨네. 그리고 편의점에 당도해 우유 한 병을 꺼냈다. 달랑 이것만 계산하려니 아쉬워서 과자도 집고, 초콜렛도 집고, 컵라면도 두 개 골랐다. 계산대 근처에 있는 보온 음료수 중에서 커피까지 하나 꺼내자 큰 봉다리 하나 가득히 물건이 쌓였다.
왼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바람은 서늘하게 피부에 와 닿고, 손에는 따듯한 캔 커피가 있고, 눈은 몹시 맑았다. 시계를 보면 이제 겨우 12시 30분. 산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봉다리를 크게 흔들며 기세 좋게 공원을 향했다. 걷기가 귀찮아지면 벤치에 앉자. 그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가끔 커피로 목을 축이는 거다. 아, 이거 정말 좋은 데.
동네의 치안을 담당하는 히바리의 덕인지 노숙자도 연인도 없이 공원은 한적했다. 등을 기대고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땄다. 한 모금을 마시니 단 맛이 강한 커피가 따듯하게 목구멍을 뎁혔다. 연이어 담배 한 모금. 입가가 저절로 풀리고 기분이 좋아서 몸이 나른해졌다. 정적에 잠긴 공원에서 혼자 낄낄거리며 소음을 유발했다.

"조용해서 좋네."

커피를 다 마시고 담배를 두 대쯤 피우면 이제 1시. 일어나야하는데 괜시리 미련이 남아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니 정적을 뚫고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야밤에 폭주족인가? 한심한 놈들. 작게 비아냥거린 후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는 중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면 예상외로 익숙한 얼굴이다.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아니 왜 저놈이. 가슴팍의 셔츠만이 희게 빛나는 히바리 쿄야가 양손에 무기를 들고 사납게 웃고 있었다.

"이 시간에 공원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아무 것도."
"멀리서 담뱃불을 보고 왔는데 거짓말하지 마. 거기에 너 호출에도 응하지 않았지?"

좋은 목소리에 나긋한 말투로 선언했다. 물어 죽여주마. 톤파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흉흉하게 들렸다. 이런 제길. 몸을 급히 눕히며 불붙은 담배가 입에 물려있는 것에 감사했다. 손을 허리로 뻗어 다이너마이트를 꺼냈다. 또 폭약이야? 야밤에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아? 야밤에 오토바이 몰고 다니는 네 놈이 할 소리냐!!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톤파에 땅이 패였다. 두 번 피했지만 결국 왼팔이 스쳤다. 그래도 그 정도야 예상했던바, 욱신거리는 왼팔을 떨구며 다이너마이트를 낮게 깔아 던졌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오른손에 든 무기를 공중으로 날렸다. 화약 냄새가 나고 불씨가 톤파에 부딪혀 사라져갔다. 어두우니까 낮보다는 저놈도 궤적을 읽기 어렵겠지. 거기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미성년자 흡연은 위법이야."

피 묻은 톤파를 가볍게 털며 히바리는 시시한 경고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니까 미스가 있었다면 오른 손에 있던 다이너마이트를 던진 후 뒤로 물러나 거리를 확보하려는 순간 놈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머리를 가격해 왔다는 거다. 간신히 직격은 피했지만 이미 스친 후라 찢어진 부위에선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그 다음이야 일사천리. 역시나 이번에도 발로 까이고 말았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고쿠데라는 배를 움켜잡았다. 멀리서 다시 오토바이 엔진음이 들렸다. 젠장.

-----------

야밤의 폭행 덕에 고쿠데라는 이마에 붕대를 감고 등교해야만 했다. 츠나의 놀란 얼굴에 대고 태연하게 어제 맞아서 그렇다며 고쿠데라는 웃었다. 머리는 다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그것을 외면했다. 옹졸한 자존심에 한 번 더 당했다고 말하기 싫었던 탓이다. 고집스레 다른 화제만을 꺼내자 츠나는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고쿠데라군, psp 이번에 새로 나온 거 봤어?"
"아 그거 파란색이 괜찮던데...."
"응.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색은 파란 게 가장 나은 거 같더라. 사실 람보가 마리오카트에 빠져서 요새 완전히 뺏겼거든. 하나 새로 살까해서 말야."
"그 바보소가!! 십대째 저라도 괜찮으시면!!"
"아니아니 괜찮아! 고쿠데라군. 그거 꽤 낡았고 또 요새 나 하는 것도 없고 또 새 거도 갖고 싶고....."

당장이라도 뛰어가려는 고쿠데라를 츠나가 말렸다. 가로막힌 고쿠데라는 흥분한 목소리로 람보를 탓했다. 글쎄 괜찮다니까. 결국엔 츠나가 쩔쩔매며 람보를 옹호해야만했다. 가슴 깊이 한숨을 쉬며 신세한탄을 한 츠나는 저렇게나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만큼 상처에 대해선 잊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했다.
고쿠데라는 오전 내내 비몽사몽한 채로 수업을 들었다. 잠이 부족하고 몸도 피곤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주머니를 뒤져 돈을 가늠하고 하품을 했다. 츠나가 어색하게 그를 불렀다.

"네. 십대째 무슨 일입니까?"
"저기 내가 아니라 뒷문에서 부르고 있는데....."

고개를 돌리자 단발머리 여학생이 게면쩍은 얼굴로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상을 쓰고 다가가자 그녀는 재빠르게 친구가 기다리니 꼭 운동장에 있는 큰 벚나무 아래로 지금 가달라는 말을 전했다. 뭐? 아니 본인도 아니고 이게 뭐야. 메신저냐. 고쿠데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의 경애하는 십대째가 이를 저지했다.

"난 괜찮으니 다녀오도록 해. 고쿠데라군. 옥상에서 야마모토랑 기다릴 테니까 그리로 와."
"하하. 그래. 츠나랑 먼저 가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봐. 무시하지 말고."
"네놈은 왜 끼어드냐!! 아무튼 십대째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올 때까지 저 바보 놈을 방패로 쓰셔서라도 반드시 무사하셔야합니다."

거창한 당부에 츠나는 그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안전할 테니까 걱정 말고 다녀 와. 비장하게 수긍한 고쿠데라가 복도를 달렸다. 하하 고쿠데라 어지간히 급한 가봐. 야마모토가 경쾌하게 웃었다. 그러게. 츠나는 묵묵히 답하며 도시락을 꺼냈다.
운동장에 있는 큰 벚나무라면 하나뿐이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소각장 근처에 자리한 나무 아래에 옅은 갈색머리로 염색한 여자아이가 실내화로 흙바닥을 긁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여기까지 전해져와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귀찮았다. 머리를 긁으며 다가가 불렀다.

"할 말이 뭔데."

고개를 든 여자아이는 발개진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에 인상을 쓰는데, 재수가 없음인지 기대하는 말 대신 애먼 소리가 들렸다.

"또 너? 불순이성교제는 좌시하지 않아."

아니 그건 이쪽이 할 말인데!! 왜 또 네놈이야. 아 진짜 요즘 왜 이렇게 자주 만나!! 아주 그냥 이번 주 운세가 꽝이군. 정말 더럽게도 운이 없다고 생각하며 고쿠데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쥐었다. 상태야 좋지 않지만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맞기는 싫어서 급하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히바리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고, 여자아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주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히바리가 톤퍼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해왔다.

"교칙 위반에 호출 불응에 담배. 그리고 이번엔 여자야?"

풍기문란의 완성형이냐는 듯 죄명을 나열하며 히바리는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오른발로 가볍게 바닥을 찬 후 곧장 돌진해 들어왔다.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서 겨우 첫 공격을 피했다. 그리곤 땅거지 신세. 히바리는 일어날 틈조차 주지 않고 톤파를 휘둘러왔다. 땅이 패이고 먼지가 날리고 고쿠데라는 몹시 피곤했다. 죽을 맛이다. 심지어 벽에 머리까지 박았다. 그러나 상대는 박장대소 대신 가열찬 한 방을 다시 날렸다. 간신히 피하자 벽이 무너져 내렸다. 안색은 창백해지고 눈앞엔 무기가 오가고 아니 차라리 내가 몰려다녔다고 패던가! 젠장. 결국 궁지에 몰려 소리를 질렀다. 너 뭔가 착각하나본데 대체 왜 고백하러 온 여자 때문에 내가 맞아야 하는 거야!

"대체 내가 왜 맞아야하는데? 불순교제라며. 으악. 잠깐 난 찼단 말이다!!"

다행히도 톤파가 멈췄다. 팔을 교차해 머리를 방어하던 고쿠데라는 조심스럽게 감은 눈을 뜨며 상대를 관찰했다. 히바리는 사나운 얼굴 그대로 단지 입가만을 올려 비아냥거렸다.

"에, 그녀와 하려던 게 아니었어?"
"이익, 누가 하냐!!"

살기 대신 단순한 의아함을 담아 히바리가 말했다.

"수집된 정보엔 네가 이미 다수의 나미모리 여학생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니야?"
"무슨 소리야! 한 번도 없어!!"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저딴 소문을 퍼트린 거야! 죄다 차버린 탓에 오히려 악성적인 루머가 학생들 사이에서 조성된 모양이었다. 히바리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전교생이 알고 있겠군. 분해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그러자 무뚝뚝한 얼굴로 히바리가 한 번 더 물었다.

"정말로?"

고쿠데라는 우악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답했다.

"절대로 없어."

그럼 시시한지 길게 하품을 했다. 보아하니 낮잠을 자다 온 모양이다. 이제 더 싸울 일은 없었기에 고쿠데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삼일 연속으로 얻어맞은 탓에 어디 하나 온전한 곳이 없었다. 연골이 상하면 다 저 놈 탓이야. 왼팔을 주무르다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히바리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인데. 분하고 억울했다. 아니 할 생각은 없지만 하면 또 어때서? 뭐가 문젠데? 그래서 물었다.

"이봐. 그런데 만약에 내가 정말로 그랬으면 너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히바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더러우니까 둘 다 죽였겠지. 그보다 그만 꺼지지 그래?"
"잠깐만. 뭐? 더러워?"

답은 없어도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저 그런데 너 중3이나 되어서 생각하는 게 그렇다면 좀 이상하지 않냐? 나도 뭐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섹/스/가 더러운 건 아니잖아. 그게.... 뭐 하긴 샤말이 성교육을 하니. 아니 잠깐 그럼 그전엔 어쨌다는 거야? 양갓집 규수도 아니고 사내놈이 그게 뭐야. 이상하잖아. 그래서 싱숭한 마음에 그만 헛소리가 나가고 말았다.

"너 자/위/는 하냐?"

단번에 맞았다. 화끈하게 열이 오를 만큼 아팠지만, 히바리의 찌푸린 면상 덕에 기분은 상쾌했다. 놈이 없었다면 손으로 브이 자라도 그리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에 때린 후에 한다는 말이 또 가관이다.

"추잡한 말 하지 마."

아가씨처럼 얼굴을 붉히는 대신 기분 더럽다고 인상을 썼지만 그것이 몹시 우스웠다. 아 그러니까 천하의 히바리 쿄야는 숙맥이라는 거지? 뭐랄까. 정말로 사소하고 쓰잘 데 없는 우월감이다. 그래도 이거 하나 이겼다는 게 뛰어오를 만큼 유쾌했다. 그래서 짓궂은 농담을 더할 생각으로 그만 또 묻고 말았다.



* 중간의 / 는 임의로 넣은 것일 뿐 책에는 삽입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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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제목 : 십대인 아이는 짐승과 같다.

1. 책 사양 : 총 253p, 신국판(148X225mm) 사이즈. 가격은 8,000원. 삽화는 없고 소설만 있습니다. 일단 둘이 거사를 치루는 관계로 19금입니다. 기본적으로 둘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기에 담담한 분위기입니다.  

2. 목차 : 총 3부로 1부 변화, 2부 바리아, 3부 미래 순으로 진행됩니다.

3. 간략한 소개 :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히바고쿠 패러디로 고쿠데라의 후천적인 여체화를 다룬 소설본입니다. 몸은 바뀌지만 성격이 변하진 않습니다. 다만 여자아이가 됨으로써 고쿠데라의 땅 파는 성향이 조금 심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커플은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히바리와 고쿠데라에게 사랑의 작대기를 들이대는 캐릭터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다른 캐릭터로 오롯이 존재합니다. 그 중 디노가 제법 좋은 어른으로 활약합니다.

고쿠요 이후를 시작으로 바리아를 거쳐 미래편 표적 205(라이센스 22권)까지를 참고로 원작의 흐름대로 진행하며 두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는 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원작의 상황을 두고 그 때 이 둘은 어떠했을까를 고려해 개인적 해석을 덧붙여 행간을 채웠습니다. 3부의 내용이 최근 점프의 진행과 해석이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3부의 내용은 개인적인 패러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해바랍니다.

히바리와 고쿠데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환경과 다른 주위사람의 영향도 받고 깨지면서 조금씩 한 걸음 나아가는, 근본적으로 둘이 잘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식으로 글이 쓰여졌는 지에 대해서는 샘플을 참고 바랍니다. ^^

◆ 샘플 1. 제1부 변화 중에서
◆ 샘플 2. 제2부 바리아 중에서
◆ 샘플 3. 제3부 미래 중에서


덧붙이는 말 : 처음에 단순히 지인 배포용으로 만들었다 보니 후기나 저작권 표시에 조금 잔망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 탓에 후기가 가벼워 보이니 양해바랍니다. 더불어 저작권 표시에 있어서도 가벼운 뉘앙스를 풍깁니다만 저작권은 존재하니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람보를 란보라고 잘못 표기하고, 우리를 오이(우리의 한자가 瓜(오이 과)인데다 한국어로 ‘우리’라고 하면 특별히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고, 또 번역기를 돌려보면 오이라고 나오기에 ‘오이’라고 본문에 표기했습니다)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역시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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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1. 제1부 변화 중에서

2009/04/21 01:36 | Posted by 우나(una)
손을 뻗었다. 상처입고 먼지에 둘러싸인 추레한 몰골의 후배가 의아한 눈을 한다. 몸을 조금 구부리면 폐가 압박을 받는다. 상처에서 나는 발열 탓인지 머리가 뜨겁다. 조금 더 손을 가까이 하지만 여전히 영문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 찌푸린 얼굴로 히바리는 단조롭게 말했다.

“손을 잡아.”
“어? 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고쿠데라 하야토는 매우 낭패한 얼굴로 여전히 우물쭈물하더니 별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밀어 왔다. 먼지 냄새가 피어오를 것 같은 손을 끌어당겼다. 휘몰린 먼지보다 진빠진 피와 땀냄새가 코를 찔렀다. 팔을 두르면 부딪히는 맨살의 감촉에 희미하게 위화감을 안았다. 부드러운 살덩이가 어깨를 잡고 겨드랑이 사이로 미약하게 살집이 닿았다. 머뭇거리는 기세가 여전했지만 히바리는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올랐다. 조금 이상해도 어차피 채무를 청산하면 끝날 사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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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데라 하야토 스스로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그가 부상을 치유하고 퇴원을 한 때였다. 정확히는 샤말이 그를 일깨웠다고 할 수 있다. 진찰은 하지 않지만 차트는 훑어본 샤말이 머리를 긁으며 다가와 전해준 말은 확실히 충격적이었다.

“그럼!!! 그럼 어떻게 된다는 건데!!”

평소와 달리 달려들어 셔츠를 움켜준 어린 제자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샤말은 멋쩍게 웃었다.

“지금으로써는 예상외인 상황이라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어. 그러니 일단은 지켜봐야지. 진정이 되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어차피 너 성기도 없었으니 이 기회에 여자가 되는 쪽이 낫지 않아?”

그리고 후련하게 뺨에 한 방을 맞았다. 힐쭉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부상이야 다 나았다지만 몸은 영 개운치 않았다. 아마 샤말이 말한 호르몬 변화 탓인지도 모른다. 열이 계속 올라 눈을 떠도 제대로 볼 수 없어 그저 물만을 먹고 잠을 자기만 한 지 3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이제 얼굴형마저 미세하게 변해 있었다. 본래 예쁘장한 얼굴이었고 몸도 말라 세밀하게 보지 않으면 그리 어색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미 허리수치부터 확연하게 줄어있었다. 2인치는 엄청났다. 딱 맞던 교복바지를 마치 푸대 자루처럼 바꿨고, 셔츠는 벌어져 있는 듯 보였다. 어깨가 조금 둥그러지고 목이 좀더 가늘어 지고 확연하게 근육량이 떨어졌다. 여자는 지방이 많다더니. 허벅지 크기만은 동일한 듯 했다. 인상을 쓰다 결국 욕지거리를 했고 그리고 좌절해야했다.

“이거 목소리가........”

아직은 애매모호하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변성기가 아닌지라 조금 톤이 올라간 느낌이지만, 아마 평소 말하듯 강하게 말하지 않으면 새된 목소리가 샐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본은 허스키하니 그나마 다행일까. 목소리의 보존을 위해 담배를 물며 고쿠데라는 고민했다. 이 몰골로 학교를 가야하나. 안가면 십대가 걱정하실 텐 데. 한숨이 쌓여 담배 열 개피를 날릴 때까지 그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은 뫼시러 가야지. 최대한 체구에 맞게 하려고 처음으로 셔츠의 단추를 일일이 채우고 목 위로 숨이 틔이게 단추 하나만을 비웠다. 벨트로 허리를 맞추고 자켓을 걸치고 머리를 세팅하고 거울을 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꼬집을 만한 것이 있지는 않은 그럭저럭한 중학생으로 보였다. 깊게 숨을 내쉬고 고쿠데라는 사와다 츠나요시의 집 앞으로 기분좋게 출발을 감행했다.

“십대째!!”
“고쿠데라군. 몸은 괜찮은 거야?”
“아. 물론. 거뜬합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조금 살이 빠진 거 같아서......”
“예 뭐. 조금.”

내심 뜨끔했지만 애써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응. 그렇구나. 십대는 조금 미심쩍어했지만 금세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람보가 사고친 일. 리본씨가 평소보다 오래 잔 일. 숙제가 어려웠던 일. 기운이 쭉 빠져 한동안 목만 돌려도 근육통을 겪었던 일. 하나하나 맞장구를 치다보면 그렇게 야마모토가 보이지 않았다. 동물같은 녀석이라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십대가 마치 사고를 읽은 듯 답해왔다.

“아. 야마모토는 오늘부터 야구부 연습이라 한동안은 같이 등교 못할 거래.”
“그렇습니까? 잘 된 일이군요.”
“고쿠데라군.”

쓴웃음을 지으며 십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미모리 중학교는 그다지 멀지도 않아 이제는 입구가 보이고, 눈앞에는 늘 그렇듯이 풍기위원이 서 있었다. 히바리 쿄야는 보이지 않았다. 한 때는 불같이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서로 귀찮음을 배제하고자 - 풍기위원쪽에서도 고쿠데라 하야토의 위반을 알려서 위원장이 나서는 모양새가 반복되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쿠데라가 복장을 단정히 할 리도 없었다. -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었다. 서로 눈 한 번 마주치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 그래. 고쿠데라군. 히바리씨도 어제 퇴원했다고해.”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부상이 심했네요.”
“응. 그럴지도. 그 사람 뼈도 많이 부러졌는 데다 무리하게 움직였으니까.”

무리하게라. 그도 그렇군. 흘깃 생각해보면 그랬다. 고쿠데라 자신도 부작용에 과다출혈에 계단을 굴러 얻은 타박상과 염좌의 혼합이었지만 좀 더 일찍 행방이 불명된 풍기위원장은 더 가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 곱상한 얼굴엔 얻어맞은 자국이 적나라했고 몸을 일으키는 자세도 조심스러웠다. 히바리 쿄야는 가슴을 건드리지 않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주제에 쌓인 분노를 풀고 싶었던지 애용하는 무기를 손에 쥔 후의 움직임은 날렵했다. 그 등을 보고 안도했던 자신에 대한 환멸도 있었지만 그보단 안심이 컸다. 견고하여 넘을 수 없는 바위와 같은 이미지가 이미 자신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분하면서 기쁜 묘한 감정이었다. 그래. 1회전에서 졌지만 상대가 우승을 하면 그래도 내가 가장 강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그런 유치함일지도 모른다. 설욕은 커녕 필패를 거듭했지만 그런 만큼 이기고자 하는 마음도 강했다. 정말이지. 이기려는 생각만 아득바득 안고 있다니 마피아 실격이다.

“어? 고쿠데라군. 왜?”
“예?”
“아니 갑자기 웃어서.”
“아. 아니 별 거 아니에요.”
“그래? 아. 오늘 1교시부터 수학이지. 하기 싫다.”
“문제없어요!! 이번부터는 무척 쉬운 분야인 걸요.”
“으응. 그러길 바래.”

한숨을 내쉬는 십대째를 보며 고쿠데라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웃어?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쓸데없이 신경을 쓰긴. 쳇. 카악. 잊어. 잊으라고. 뇌 속에서 홀로 난장을 부리다 지레 포기했다. 아 그래. 조금 생각했을 수도 있지. 좀 기쁠 수도 있지. 이러니저러니 그거 명백하게 진귀한 일이잖아? 아. 안 그러냐고.
지루한 수업은 공상보다 잠을 불러와 기묘했던 자신의 작은 행태는 꿈 속에 파묻혀 쉽게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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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면 돈은 궁하고 배는 고팠다. 거기에 내리 컨디션이 안 좋은 탓에 머리가 어찔하기도 했다. 샤말을 닦달해 한통을 얻어낸 아스피린 두 알을 씹으며 저녁을 고민했다. 영양식을 먹어둬. 어떤 거? 먹기 쉬운 파스타도 괜찮지. 입맛에 맞는 게 없어. 그건 또 그렇군. 샤말은 끝내 먹으러 오라고 권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라고 인식이 되면 달라질까. 글쎄.
지구온난화의 극진한 영향 탓인지 요 며칠간 날은 무더웠다. 샤워를 하고 뒹굴거리다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러니저러니 신경이 쓰이는 작은 가슴을 고려해 검고 부피감이 있는 티와 옅은 갈색의 짧은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여기엔 왠 여자아이가. 후우. 깊은 한숨을 쉬고 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었다. 걷는 와중에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해 우악스럽게 뒷머리를 묶었다. 우유맛 가득한 하드를 입에 물고 편의점을 둘렀지만 입맛이 없는 탓인지 평소에 즐기던 레토르트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왕 더운거 차라리 멀리 있는 수입식품점을 찾는 쪽이 나을 것도 같았다. 못하면 식당이라도 들어갈 생각으로 30분을 걷기로 했다.

“아. 젠장. 더워 죽겠군.”

그래도 여지껏 걸었다. 이왕이면 쓰러지더라도 버스비는 건지는 쪽이 이익이지. 막대기만 남은 하드를 버리고 잠시 멈춰 땀을 닦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래 이거 명백히 싸움이다. 둔탁한 소리와 비명과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왁자하게 뒤섞여있다. 15? 아니 30명은 되겠군. 결국 호기심을 못 이기고 기웃거렸다.
넓은 골목에 환한 가로등. 그 아래 어두컴컴한 사내놈들이 악다구니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 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중이었다.

“히바리.”

입 밖으로 소리가 샌 것은 어이없음의 반증이었다. 시시하게. 보면 살아남은 건 두어명으로 길어도 30초를 넘지 못하고 끝낼 모양이었다. 더위에도 고생이군. 시큰둥한 감성을 안고 이제 그만 걸음을 옮길 찰나였다. 나직한 소리가 습한 공기를 통과해 귀에 닿았다.

“너. 일행이야?”

말을 망설인 것은 마땅한 답을 택하지 못한 탓이다. 아닌 건 아닌데 아니라고 말하자니 우습잖아. 라는 거기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애매했다. 습기 찬 밤공기에 옷자락이 달라붙는 와중 마무리랍시고 누워있는 사내놈을 후려갈긴 후 히바리는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멱살이 잡혔다.

“큭. 이거 놔.”
“일행이냐고 물었잖아?”
“딱 보면 모르냐!!! 당연히 아니잖아. 이거 놔!!”

양손으로 힘껏 누르는 손을 내리쳤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손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흘깃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흥미를 잃은 듯 손을 놓았다. 어느새 들어 올려졌던지 먼지를 털듯 손을 놓자 고쿠데라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잇소리를 내며 꼴사나운 꼴에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분노를 표출하며 다이너마이트를 향해 손을 뒤로 돌린 순간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

“어. 아? 하. 하.”
“흐응.”

놈이 콧소리를 냈다. 검푸른 눈이 흥미를 보였다.
몸을 일으킨 순간 박자를 맞추듯 뻗은 손이 땀에 젖어 달라붙은 티셔츠 위의 작은 가슴 위를 움켜잡았다. 마른 침이 고였다. 당황한 나머지 고쿠데라 하야토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그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히바리 쿄야가 시시하다는 듯 손을 털어버렸을 때였다.

“이 개자식!!!”

불붙인 담배도 다이너마이트도 예비용 권총도 없는 채로 맨몸으로 달겨들었다. 너는 머리가 좋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데다 피해망상이 강해서 적합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면이 있으니 주의해. 그래. 샤말이 그랬지. 하지만 어차피 저 놈 상대라면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톤파에 가격당할 게 뻔하다. 그러니 이건 합리적이야. 이 개자식 죽어!!!
더운 여름에도 어딘가 서늘한 히바리 쿄야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대로 톤퍼를 휘둘렀다. 안면에 한 대. 오른 팔뚝에 한 대. 복부엔 구둣발이 들어왔다. 맞은 볼이 뜨거웠다.

“그런데 너 여자?”
“누가!!”
“그럼 그건 뭐야?”
“이....이건.”

새파랗게 빛나는 놈의 눈을 봤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몸놀림으로 주저앉아있던 고쿠데라의 목을 톤퍼가 내리눌렀다. 왼손으로 목을 고정시키고 배를 누르고 몸 위에 올라탔다. 기도가 막혀 숨을 몰아쉬는 데 빈 오른손이 움직인다. 목울대를 지나 가슴을 스치고 천천히 치골까지 내려왔다.
아아악. 제지의 말은 외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끔직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마. 하지마!! 제발 하지마!!!! 거기까지였다. 새파랗게 질려서 공황상태에 빠져있는데 목이 편안해졌다. 히바리는 톤퍼를 치우고는 재빠르게 고쿠데라의 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셔츠깃을 매만지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나른한 소리가 들렸다.

“귀찮아졌어.”

히바리는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등을 보였다. 검은 등은 슥슥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가더니 갑작스레 고개를 돌렸다. 흠칫 놀라는 와중 시큰둥한 경고가 귀를 울렸다.

“여하튼 여자라면 교복부터 바꿔 입어.”

누가. 웃기고 있네. 병신 같은 놈. 욕설은 강물처럼 가슴 속에서만 흘렀다. 나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를 낼 뿐 결국 아무런 비난도 하지 못했다. 내가 실로 한심스러웠던 또 다른 순간이었다. 여름이라 짧은 옷차림에 훤히 드러난 팔다리는 이미 생채기 투성이었다. 팔은 간신히 부러지지 않았지만 화끈거렸고 그것은 얼굴도 목도 매한가지였다. 무슨 스토리를 자아내든 숙덕거림의 대상이 될 모습이라 결국 식료품점을 포기하고 자판기에서 라면을 사는 걸로 숙식을 해결했다. 머리가 울려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얼음찜질을 했지만 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 선 모습엔 오른 볼이 주먹크기만큼 부풀어있었다. 가라앉으려면 적어도 3-4일은 걸리겠군. 오랜 경험으로 적당히 추측을 하고 십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당분간은. 예. 아뇨. 별 일 아닙니다. 그저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예. 아. 심한 건 아니고 감기에요. 예. 예. 예.
뜨겁고 머리가 아프다. 아. 에어컨이 나와서 다행이야.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아스피린을 삼켰다. 붓기를 가라앉게 하려고 습포를 붙였다. 팔에도 목에도 다리에도 뺨에도. 그리곤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여자. 여자라. 해프닝이라고 줄곧 고개를 돌리려던 일이었다. 원래도 어중간했다. 호르몬 주사를 맞아온 것도 거짓이 아니다. 샤말은 애매하게 두고 보자고 말했지만 제 역할도 못하고 말라붙어있던 작은 성기가 사리진 이상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단순히 그의 모기에 의한 일이라면 벌써 반대되는 모기에라도 한 방 맞았을 것이 아닌가. 차분해진 뇌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벌써 끝난 일이야.
아마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힘겹게 겨우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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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대회도 끝나고 일본은 여전히 나른하게 졸린 듯 평화로웠지만 소란은 거리낌 없이 찾아왔다. 한가로운 나들이의 한 중간에 벌어진 일이다. 바보소가 여전히 소란을 피우고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하게 말이 오가는 데 큰 폭발음이 들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렸고, 몇몇은 멀찍이서 영화촬영이냐고 수군거렸다. 불꽃을 이마에 흘리는 소년이 조금 밀리고 있었다. 분명 십대와 같은 불꽃을 발하는 소년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인 상대는 의수를 단 은발의 괴악한 검사였다. 이름은 스쿠알로. 엉겁결에 끼어든 일은 본고레의 것이었고, 나도 야마모토도 압도적인 검사의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분함을 안고 결의를 다지면 배달된 것은 반지였다.
리본씨는 평이하게 말했다.

“본고레의 수호자를 상징하는 본고레 링이다.”

반이 부족한 반지는 적의 존재를 암시했다. 그 은발이 그 중 하나. 암살집단 바리아라면 대충 이름정도는 알고 있는 먼 존재였다. 그들이 적이다. 거기에 수호자. 나는 잠시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을 정도로 환희에 빠졌다. 막연한 꿈이 눈앞에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링의 가치에 절감한 것은 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호자라는 제도는 알고 있었지만 링은 모르고 있었다. 상징하는 바야 하나밖에 없다. 미래의 주역으로 낙점을 받았다는 말이다. 일본에 차기 후계자의 수하로 불렸을 때부터 가까워지던 위치는 반지로 기반을 다졌다. 문제는 이제 수련인데.
인상을 쓰고 한숨을 쉬고 머리를 긁고 고쿠데라는 긴장을 풀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가며 천천히 보건실을 향했다. 뚜벅뚜벅 소리는 경쾌한데 속은 죽을 맛이다. 기대야하는 것은 저 변태의사였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주보았지만 술 냄새를 풍기는 악취 나는 연상은 거절할 때만은 냉혹한 눈을 했다. 칼 같은 거절은 닫히는 문과 함께 하나의 좌절을 안겼다. 종종 히바리와도 겨뤄봐서 늘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지만 중요한 것은 던지고 나서의 방향조정이 불가능하고 비행거리가 짧다는 점이었다. 한 때 그가 보여줬던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는 종이비행기를 단 번에 맞췄던 기술처럼 최소한의 수준이 필요했다. 한 방에 질리게 만들었던 은발의 맹목적인 강함이 떠올라 사람을 진절머리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쿠데라 하야토는 알지 못했지만 준비에 필요한 시간 또한 고작 열흘밖에 없었다. 디노가 뒤로 도움을 준 덕에 바리아가 가져간 반지는 가짜였고, 그 진실이 규명되어 그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데까지는 최소한 10일이 걸릴 거라고 예측되었던 탓이다.


수호자의 선정에 뒷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츠나가 한심하게 여기다 못해 심지어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한 그의 아비는 쌩쌩하게 살아있었다. 나나는 당연하다는 어투로 아버지가 없다면 누가 생활비를 대주었겠니?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며 대낮부터 자는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던 이에미츠는 츠나가 나가고 리본이 들어오자 표변한 모습을 보였다.

“여어 친구.”

곡괭이에 안전모를 쓰고 런닝구를 걸치는 중년이 제법 살기가 번뜩이는 눈을 한다. 리본은 예의 태도로 작은 주먹을 내밀어 맞부딪혔다. 어린 목소리가 무뚝뚝한 소리를 냈다.

“수호자 선정이 너무 빠르군. 이에미츠.”
“어쩔 수 없었어. 잔자스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으니까. 거기에 9대와는 접촉이 불가능했다. 리본. 긴급사태였어.”
“그렇다 해도 선정이 급했어.”

양 손을 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에미츠는 다시 술잔을 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있나. 다급하니 급하게라도 모아야지. 그래도 제법 츠나 주위에 쓸만한 애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 무쿠로도 그렇고 말이야. 안개는 성질이 괴팍해서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정말 운이 좋았지.”
“제법 쓸만한 것이 츠나의 악운이지. 이에미츠. 네 아들은 확실히 초대만큼 운이 좋아.”
“그런가?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군.”
“격하도 특수체질인 걸 보면 운의 정도를 알 수 있지 않나.”
“하하. 그런가. 그래도 그 소같은 꼬마 20년쯤 지나면 물건이 될 지도 몰라.”

긴급 상황임에도 선정엔 20년 후를 기대하는 꼬마가 끼어있었다. 뭐, 그에겐 10년 바주카라는 공전절후의 물건이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남이 보기에 지나치게 여유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하튼 빠르게 인물을 고르고 그것을 승인한 두 선정자는 아이들에 관한 설화를 계속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선정에 숨겨진 뒷이야기는 오직 당사자만이 오르는 비밀이었다.
이에미츠만이 연신 술병을 비우는 가운데 멀리서 색 고운 금발머리가 검은 수하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카발로네의 디노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리본. 무슨 일이야?”
“네가 맡아야 할 망아지가 한 마리 있거든. 성질이 사나운데 빈 게 너 정도니 수고하라고.”
“그 짠 평가는 뭐야. 너무한 데.”
“한 번 제자는 영원히 제자지.”

무너진 얼굴로 디노는 한가롭게 웃었다. 느긋한 수하들도 따라 웃고 이에미츠도 껄껄대는 소리를 냈다. 느직하게 여유가 감돌았지만 사실 상황은 좋지 못했다. 디노가 가짜를 넘겨 담금질할 시간을 벌었지만 그 정도야 언제라도 눈치 챌 수 있는 소소한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린애들을 굴리지 않으면 수호자를 결정할 때 간단히 목이 날아갈 위험이 컸다. 츠나를 좀 더 강하게 조련해야했는데 아쉽게 됐군. 리본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이상은 무리일 거야. 경험이 있는 디노가 반박하자 리본은 재빠르게 일감을 떠넘겼다.

“히바리 쿄야. 구름의 수호자다.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 일일이 설명도 해야 할 거야.”
“정말 한가한 놈으로 취급하는 군.”
“지금은 9대의 문제보다 당면한 본고레의 후계를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거기에 잔자스에겐 다른 카드도 있겠지. 사태를 주시할 동조세력이 필요하니 일본에 있어라. 디노.”
“그 정돈 알고 있어. 너와 이에미츠도 관여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래. 본고레의 내분이니까.”

바람 부는 밤을 닮은 서늘한 소리였다.

--------------

약과 반창고와 과산화수소에 절여진 솜과 붕대가 휙휙 둘러쳐졌다. 그래도 내장이나 뼈가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한숨을 쉬고 있으면 어깨를 툭툭 치며 얼굴에 흉도 남지 않을 거라고 위안을 전했다. 이마를 찌푸리며 상관없다고 하자 남자나 여자나 얼굴은 소중하다며 둘러 변명을 했다. 이놈의 아저씨가. 그렇게 로마리오를 째려보고 있으면 디노는 잠시 볼 일이 있다며 다른 부하를 데리고 병원을 나갔다. 이만 집에 가려고 했지만 칭칭 감아둔 붕대에 옴짝 달싹을 못해 낑낑 거리며 쓸모없이 둘러진 붕대를 자르고 있었다.
그 시간에 디노는 히바리의 맨션을 향하고 있었다. 전화로 소재지를 물으면 부하에게서 학교를 떠난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노크를 하기 전에 손잡이를 돌리면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고개를 돌리더니 얼굴을 확인하자 부루퉁한 채로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쯧쯧. 혀를 차며 걸어와 먼지 나게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히바리는 빨리 쫓아버릴 심정인지 드물게 말을 걸어왔다.

“뭐야. 당신. 빨리 나가.”
“선물까지 장만해온 스승에게 너무 그러지 마. 잠시 나가자.”
“이제 당신과는 가지 않아.”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또 속일려고 그러지 하는 뱁새눈으로 노려본다. 모든 정황은 단면만 보지 말라고 했잖니. 들은 거야 만 거야. 아 하긴 그때 밥 먹는 중이었지. 늘어나는 한숨을 가다듬고 디노가 손을 까닥거렸다. 문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들어왔다. 그 손에 찬연히 빛나는 붉은 장미 다발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재촉을 했다. 꽃다발을 보고 자신을 보고 히바리는 여전히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디노가 다시 상냥히 제안했다.

“혼자 있기 심심할 테니 나와 봐.”

누구 맘대로 심심해. 삐진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따라는 왔다. 치기어린 사랑이 있군요. 여기에. 히죽 웃으며 살살 달래어 애를 차에 싣었다. 고집불통인 짐이야.
병원 앞에 당도해 내린 후에는 안을 가리켰다. 가타부타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내 의사가 아니라 끌려왔다고 항변했다. 그래, 꽃다발을 안기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자. 건네줘야지. 애인이잖아? 들어가 봐.”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로마리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면 둘만 남지. 나중에 고마워해야한다. 쿄야. 들었다면 집기를 부술 소리를 하며 디노가 운전석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멀리 로마리오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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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어설픈 미라가 있었다. 낑낑대며 끈을 풀더니 겨우 가위를 손에 넣어 힘차게 잘라나가고 있었다. 콧수염이 한 장난이군.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식은 눈으로 보고 있는 데 한참이 지나서 겨우 눈치를 챘다. 볼 때마다 생각하지만 너는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녀석이야. 깜짝 놀라는 걸 보고 어거지로 손에 쥐어진 꽃다발을 내밀었다.

“받아.”

그렇게 미니장미 백송이가 촘촘히 박힌 꽃다발을 건네 왔다. 뭐야. 우습긴. 주는 걸 받은 건 처음이다. 거기에 꽃. 도저히 저 놈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의아하다 못해 난감해 엉겁결에 받아들며 물었다.

“왜 꽃이야?”
“바보가 넘겼어. 차라리 잘됐군. 너 지금 병자니까.”

디노로군. 그래도 너 준다고 들고는 왔구나. 잡으면 물고 손발톱으로 할퀴고 난장을 칠 테지만 밥은 먹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물끄러미 꽃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다정한 소리가 들렸다. 똑같은 얼굴인데 눈꼬리가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집에 갈 거야?”
“아. 응.”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줄게. 손에서 다시 꽃다발이 옮겨가 히바리의 오른손아귀에 꽃뭉치가 잡혀 있었다. 팔랑팔랑 흔들고 있어서 도저히 꽃다발을 든 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망연히 웃었다. 바보다. 오랜만에 등을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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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3. 제3부 미래 중에서

2009/04/21 01:35 | Posted by 우나(una)

히바리는 여전히 구름의 수호자였고 나는 늘상 바쁘기 그지없었다. 일은 서류더미와 모니터의 반짝임으로 시작되고 전원의 불이 나가야 끝이 났다. 안경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고 어깨가 굳어 갔다. 피곤에 가끔 오락가락할 때면 소파에서 잠을 잤는데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 불쾌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작은 핸드폰이 손바닥 안에서 진동했다.

“뭐야?”
“아. 일이 있어.”
“어? 히바리?!”

통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현격히 멀리 떨어져 지냈다. 월말부부야? 야마모토는 그렇게 농담했다. 시끄러워. 뒤통수를 내리찍으면 재빨리 피해 사라져버렸다. 연락도 직접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신기한 일이군. 또 박스를 찾았나? 고민을 하고 있으면 부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히.....히바리 쿄야씨가......덜덜 떨리는 소리가 고해졌다. 그렇게 떨지 않아도 그 바보는 죽이지 않아. 고개를 까닥이며 승낙을 표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검은 양복을 입은 히바리가 날렵하게 몸을 드러냈다. 앉아서 인사를 했다. 차를 타준 것은 그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히바리는 드물게 고민을 하는 얼굴이다. 찻잔을 손에 쥐고 이마를 찌푸리고 한숨을 쉬었다. 일이 재미있어 보였다. 능글맞게 웃으면 시큰둥하니 용건을 꺼냈다.

“하나 만들기로 했어.”
“뭘?”
“조직. 이대로는 불편하니까 간판을 달자고 해서 말이야.”

예전이라면 절대로 나올 리 없는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월이 말로 흐르는 감각이었다. 고쿠데라가 멍하니 말이 없자 히바리는 고민했지만 결국 말을 이어갔다. 일단 너에게 알려주려고 왔어. 어차피 연락을 도맡아하는 건 여기에 죽치고 있는 너니까. 고쿠데라가 발끈했다. 그 말은 무능하다는 거야? 설마. 히바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여전한 동안인데 얼굴조직이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웃게 되었다. 그리고 드물게 말을 고르던 히바리는 한숨을 쉬더니 단번에 용건을 끄집어냈다.
결론적으로 말해 히바리 쿄야는 그동안 그가 이끌고 있던 나미모리에서의 무리를 데리고 비공식 법인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풍기재단(風紀財團)」이라고 했다. 나는 한참동안 허리를 꺾으며 웃고 말았다. 그 유치한 이름과 썩어버린 상대의 얼굴과 이상한 평온함이 웃음을 길게 끌어버렸다. 히바리는 화를 참느라 두꺼운 원목 테이블 하나를 가루로 만들 듯 조각내 버렸다.

“아. 뭐야. 웃겨.”
“딱히 다른 이름도 없잖아?”

조금 무력한 듯 히바리가 말했다. 식은 얼굴이 시무룩하게 보였다. 그러지마. 별로 놀리는 건 아니야. 좀 웃겼을 뿐인 걸. 살랑살랑 고개를 젓고 다리를 다시 꼬고 그리고 말했다.

“아니. 그래서야 너무 장난 같으니까. 세월이 지나도 병정놀이를 하는 것 같잖아?”

그때 히바리는 대답 없이 차만을 마셨다. 나는 그것을 보며 다시 박장대소했다. 지금 그때부터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 어설피 중학생 때로부터 1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나는 눈 앞이 어두워졌다.

‘10년이 지나도 장난감 놀이 같지.’

놀리는 자신의 소리가 들렸다. 놀이가 아닌 답은 눈앞에 있었다. 머릿속이 시꺼멓게 엉켜 돌아갔다. 그거 보스가 죽기 전까진 장난감 놀이였어. 차분히 이성이 속삭였다. 놀이가 현실이 되는 건 언제야? 절친한 이가 죽어버렸을 때.

“그래도 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듣기에 아름답지 못한 소리가 히바리의 입술을 비집고 미끄러졌다. 귀를 막는 진흙 같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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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본이 사라졌다. 연기 속에 드러날 10년 후의 그를 두근거리며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직감은 계속 불길한 신호를 보냈지만 츠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란보의 바주카가 너무나 잦은 사용으로 일상성을 취득한 탓이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리본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마을을 뛰어다녔다. 이상해. 5분이면 돌아오는 건데. 10년 후의 자신이랑 바뀌지도 않고. 그래. 아무것도 없어. 10년 후에.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다시 다급히 뛰면 멀리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쿠데라군과 하루였다. 고쿠데라군이 조금 키가 컸지만 이상하게 둘의 어깨가 닮아보였다. 둘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받아주는 츠나의 안색이 창백했다. 고쿠데라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 별건 아니야. 그러니까 리본이 10년 바주카에 맞았는데 이상하게 돌아오지 않아서..... 고쿠데라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하루는 영문 모를 소리를 들은 듯 10년 바주카가 뭐냐고 물어왔다.

“십대째. 리본씨는 분명 10년 바주카에 맞아 사라졌는데 거기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거군요.”
“아 응.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10년 후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건, 없었다.....곧 10년 후에 리본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하얀 얼굴이 푸르게 질려갔다. 설마. 일단 찾아보기로 하지요. 고쿠데라군은 애써 웃었지만 얼굴색이 여전히 시퍼랬다. 우리는 서로 방향을 나눴다. 난 공원을 보고 올게. 하루는 야마모토씨에게 알리고 올 게요. 저는 학교에 가보겠습니다. 갈라져 뛰어갔다.
츠나는 다급히 뛰어다니다 10년 바주카를 떠올렸고 그와 함께 사용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후의 세상에서 자주오던 한심한 젖소무늬 셔츠의 사내를 기억해냈다. 재빨리 방향을 돌려 집으로 뛰어갔다. 계단을 오르며 뒤에 들리는 어머니의 소리를 무시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다. 뒹구는 란보를 재촉했다. 어서 10년 바주카를 써서 10년 후의 너를 불러와. 란보는 그런 거 모.릅.니.다. 평소라면 적당히 넘어갈 어리광이었지만 츠나는 다급했다. 그 머리 위에 비죽이 튀어나온 바주카를 끌어당겼다. 어린애는 기를 쓰고 이건 쓰면 안 된다고 고함을 질렀다. 맨날 쓰는 주제에 얌전히 있어!!! 당기고 땡기고 결국 어린애가 힘에 져 바주카가 딸려오려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날아오는 탄환을 보며 츠나는 생각했다. 보비노에는 10년 바주카가 있다. 란보가 몇 번이나 미래의 자신을 불러왔고, 가끔 이핀이 거기에 말려들었다. 어째서 자신은 한 번도 그것에 또 다른 사람이 해당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기묘한 충격에 감싸여 의식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 시각 헐레벌떡 학교에 들어선 고쿠데라는 그제야 휴일을 자각했다. 제길,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전에 함께 차를 했던 작은 아지트의 문을 열고 낑낑대며 얼굴을 집어넣었다. 뒤에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뭐해?”

놀라서 얼굴을 빼다 결국 뒤통수를 찍히고 말았다. 한심하군. 머리를 감싸 쥐며 타박을 들었다. 학교에 올 때는 꼬박꼬박 그 시커먼 가쿠란을 입는 만큼 눈앞의 히바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여하튼 체르벨로의 눈속임으로 일반인을 속이고 있는 부서진 학교 내를 순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마 아침에 나가있었으니 그는 여기에 계속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리본씨 못 봤어?”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역시 그렇군. 역시? 히바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인상 쓰지 마. 그럼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마. 이익. 쓸데없는 게 아냐!! 그럼 뭔데? 당했다. 머리를 움켜쥐면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말할까 고민하다 혹시 모르니 말해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해보였지만 여하튼 그 리본씨가 무려 란보의 바주카에 맞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일이었다.

“10년 바주카라는 게 있어. 맞으면 10년 후의 자신과 바뀌는 건데 그걸 리본씨가 맞았어. 그런데 돌아오질 않아서 찾고 있는 중이야.”

히바리는 하품을 하더니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럼 열심히 찾아봐.”
“네가 말 안 해도 찾아!!”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건 사와다도 고쿠데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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